에스파 정규 2집 미리 들어봤습니다….쇠맛+신맛까지 결합된 시즌3 집약체 (리뷰)

새 음반 <Lemonade (레모네이드)> “타협 없이 우리 음악 밀고 간다”

케이팝 간판 그룹 에스파(aespa, 카리나·윈터·지젤·닝닝)가 8개월만의 컴백이자 정규 음반 기준 2년 만의 2집을 내놓고 새로운 챕터, 시즌 3의 화려한 문을 열었다. 29일 오후 1시(한국시간 기준) 전 세계 동시 발매되는 2집 <Lemonade(레모네이드)>는 ‘광야(KWANGYA)’에서 시작해 ‘다중 우주(MULTIVERSE)’로 확장된 기존 세계관을 ‘COMPLæXITY(컴플렉시티)’라는 신개념으로 진화시킨 작품이다.

정식 음원 발매에 앞서 지난 26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국내 음악 평론가들을 초청해 이번 신작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비공개 청음회를 진행했다. 필자 역시 이 행사에 참석해 <Lemonade>의 전곡을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선공개곡 ‘WDA'(Whole Different Animal)와 타이틀곡 ‘Lemonade’ 등 총 11개 트랙이 수록된 이번 정규 2집 소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음반 기획 및 곡 수집 작업 등에 참여한 이성수 SM 엔터테인먼트 CAO(최고 A&R책임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가장 에스파다운, 에스파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시즌 3에 돌입한 에스파

늘 파격적인 콘셉트와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끊임없이 선보여 온 에스파의 신보는 ‘COMPLæXITY’라는 신조어로 정리할 수 있다. Complexity(복잡성)와 Perplexity(당혹성)를 합성한 이 단어는 다중 우주가 무한히 얽히면서 현실에 균열이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성수 CAO는 2020년 데뷔 이래 에스파가 걸어온 길을 총 3개의 시즌으로 요약했다. 2020~2022년에 걸친 이른바 ‘시즌 1’에선 ‘Black Mamba’, ‘Next Level’, ‘Savage’를 통해 강렬한 SMP(SM Music Performance)의 원형을 보여주고, ‘Girls’로 가상 세계의 서사를 마무리했다.

2023년 SM 내부의 격동기 속에 시작된 ‘시즌 2’는 ‘Spicy’, ‘Drama’를 기점으로 현실 세계에서의 교감과 멀티버스 개념을 접목한 자아 확장을 이뤄냈다. ‘Supernova’, ‘Whiplash’, ‘Rich Man’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히트곡을 통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리고 정규 2집이 내세우는 ‘시즌 3’의 핵심 키워드 ‘COMPLæXITY’를 앞세워, 에스파는 단순히 위기에 반응하는 존재를 넘어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다채로운 사운드 질감 앞세운 ‘WDA’ ‘Lemonade’

SM의 주요 그룹들이 그러했듯 에스파 역시 추상적인 세계관을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품마다 풍성한 실험을 단행해 왔다. 정규 2집 <Lemonade>에선 메탈릭 신스(Metallic Synths), 디스토션 베이스(Distortion Bass), 인더스트리얼 퍼커션(Industrial Percussion), 다층 레이어드 보컬(Multi-layered Vocals) 등 총 4가지 핵심 요소를 앞세워 차갑고 예리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수록곡 곳곳에 심어 놓았다.

지드래곤의 피처링으로 화제가 된 선공개곡 ‘WDA’에선 폭주하는 데이터와 기억이 뒤섞여 변이된 자아를 어두운 분위기의 크리처 형태로 시각화했다. 위험이 극도로 최고조에 달한 폭풍 전야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힙합 톤 사운드와 결합시킨 덕분에 음반의 주제를 훨씬 강력하게 전달한다.

이에 반해 애시드 테크노 장르를 표방한 타이틀곡 ‘Lemonade’는 ‘삶이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속담에서 비롯된 모티브를 시청각적 요소를 총동원해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이미 시즌 1부터 온갖 시련을 극복해 온 에스파는 이제 혼란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갖췄다.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뻔뻔할 정도의 여유와 초월적인 캐릭터성을 위트 넘치게 표현한다. ‘WDA’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정교하게 이뤄낸다. 이를 두고 에스파 멤버들은 “그동안 ‘쇠맛’이라는 표현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번엔 ‘신맛’으로 돌아왔다. 올 여름을 청량하게 책임질 것”(29일 기자간담회)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신곡의 성격을 설득력 있게 요약한 한마디다.

SM + 에스파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실험

이 밖에도 정규 음반 특유의 풍성함은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는 수록곡의 재미를 살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프로듀싱팀 문샤인(Moonshine)이 참여한 ‘Shaken’은 힙합 기반 댄스곡으로 더욱 성숙해진 에스파의 면모를 팬들에게 선보인다. 뒤이어 소개된 ‘Can’t Help Myself’에선 록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전히 ‘쇠맛’의 대표주자임을 다시금 증명해낸다.

이번 2집에서 주목할 사항은 멤버들의 보컬을 지나치게 보정하기보다 생생하고 건조한 질감으로 살려낸 믹싱 방식이다. 이를 통해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 각각의 개성 넘치는 음색 차이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나는 등 사운드 면에서도 흥미진진한 실험이 이뤄졌다.

그런데 최근 케이팝 시장에서는 복고풍 EDM이나 쉬운 훅 중심 음악이 인기곡으로 자리 잡으며 올해 상반기의 두드러진 경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에스파가 추구하는 음악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난해하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SM 관계자들은 “초반에는 낯설 수 있지만 지금 시대 자체가 이미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진 상태”라며, 이러한 혼란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에스파 음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수 CAO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음악을 타협 없이 밀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본연의 뿌리와 SM 특유의 사운드 정체성을 지키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정규 2집 <Lemonade>는 분명 유행을 안전하게 따라가는 음반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SM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SMP 계열 사운드와 글로벌 프로덕션 감각, 그리고 에스파라는 팀만이 구현 가능한 차가운 미래적 질감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물론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팀이 일관된 방향성과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데뷔 6주년을 앞둔 에스파가 여전히 케이팝에서 가장 독창적인 팀 중 하나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음반에 가깝다. 혼란과 균열마저 자신들만의 에너지로 바꿔버리는 에스파만의 방식은 어쩌면 2026년 케이팝이 가장 필요로 하는 미래 지향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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