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의 간판 걸그룹 에스파 (aespa)가 6개월만에 새 음반 와 동명 머릿곡을 앞세우고 돌아왔다. 지난 5월 발매된 미니 3집 와 ‘Spicy’로 청량함이 가미된 매운 맛 음악으로 신선한 변화를 도모했던 에스파는 또 한번의 변주를 시도했다. 미니 4집에선 단단한 쇳덩이 질감을 지닌 타이틀곡 ‘Drama’를 통해 흑화된 에스파를 다시금 전면에 앞세웠다.
총 6곡이 수록된 이번 음반은 거칠고 강렬한 느낌의 초반부 3곡 vs 자유분방함을 녹여낸 3곡이 대비를 이루면서 이 팀이 그저 하나의 이미지에 한정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신보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한 트랙은 역시 ‘Drama’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광야’라는 세계관에 묶여 있지 않게 된 에스파는 곡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드라마적인 요소를 담은 뮤직비디오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다. 뮤지컬 <시카고> 속 댄서들의 군무와 <킬빌>의 핏빛 액션을 연상케하는 극적인 구성을 통해 화려함을 추구하는 케이팝 그룹과 데뷔 초기 추구했던 전사(戰士)의 이미지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쇳덩이 질감의 ‘Drama’, 흑화된 에스파의 강렬함
신곡 ‘Drama’는 뮤직비디오, 가사 모두 어두운 분위기와 쉽게 부서지지 않는 금속의 질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I’m the Drama”(내가 바로 드라마!)를 외치는 인트로를 시작으로 “I break trauma-ma-ma-ma MY WORLD in the back”(내 세상이 뒤를 봐주면서 나는 트라우마를 깨뜨려), “한계를 뛰어 넘어 everyday”, “Oh Imma make it my way / Out of the way Yeah”(내 방식대로 할거야 / 길을 비켜라) 등의 구절로 채워진 가사는 독립된 자아로서의 에스파를 강조한다.
윈터 vs 닝닝 혹은 카리나 vs 윈터 등의 대결 구도를 몇몇 장면으로 활용하는 건 마치 내 안의 자아와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일종의 싸움처럼 비춰진다. 공교롭게도 이번 신곡 ‘Drama’는 당초 1년여전 부터 준비되었던 곡이었지만 지난 1년여의 내부 사정(SM 경영권 분쟁)을 거치면서 이제야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가사, 안무 등이 많이 수정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더욱 극적인 생동감을 갖추게 되었다. 내 방식 대로 내가 지녔던 트라우마를 깨뜨린다는 내용은 흑백 영상 속 처절한 칼싸움과 맞물려 음악의 흡인력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힙합 기반의 드럼 비트와 절제된 리듬 전개는 ‘Drama’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합을 이뤄낸다.
3곡 vs 3곡…강인함 대 여유로움의 대비
타이틀곡을 시작으로 ‘Trick or Trick’, ‘Don’t Blink’ 등 전반부 3개의 트랙은 어두운 색채와 808 베이스 혹은 일렉트릭 기타가 만드는 소리를 밑바탕 삼아 ‘흑화된 에스파’의 느낌을 가장 잘 살려내고 있다. 기존 SMP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Trick or Trick’은 ‘Drama’의 연장선상 혹은 파트2 같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통일된 이미지를 마련한다.
반면 레트로 풍의 가벼운 ‘Hot Air Balloon’은 앞선 곡들과 가장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과거 전자오락실의 8비트 사운드를 떠올려도 좋을 만큼 경쾌함과 단순함을 적절히 배합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에스파의 귀여움 혹은 앙증맞은 이미지를 세상 밖으로 끌어 올린다.
펑크 팝 사운드롤 가미한 ‘YOLO’,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낸 어쿠스틱 넘버 ‘You’ 등은 백색 혹은 활기찬 노란색 질감을 지닌 에스파도 있음을 보여준다. LP였다면 강인함을 담은 A면과 여유로움으로 충만한 B면 조합을 연상해도 좋을 법하다.
연이은 궤도 수정? 이것 또한 에스파!
회사의 경영권,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SM 소속 아티스트들의 내놓은 작품들의 색깔도 점차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에스파가 아닐 듯 싶다. 광야 혹은 나무심기 등 설왕설래를 야기하는 기존 콘셉트를 뒤로 한채 ‘Spicy’, ‘Drama’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들의 색깔을 재정립한다.
”내가 곧 드라마”라고 자신있게 부르짓는 에스파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모은다. 액션 스릴러와 뮤지컬 영화의 틀을 옮겨온 듯한 뮤직 비디오, 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안무 등의 조합은 세계관의 변화 혹은 궤도 수정이 있더라도 여전히 일관성을 잃지 않고 있다. 4명 멤버들의 좋은 합, 탄탄한 프로덕션은 주변의 어수선한 상황에 개의치 않고 오직 자신만의 길을 내달리고 있다. 이래야 에스파 아니겠는가?